
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
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, 양윤옥 옮김 / 웅진지식하우스
렛츠리뷰에는 처음으로 당첨되었다.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굽신굽신. 실은 나름의 애절한 신청 코멘트를 써 둔 뒤에 완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라, 책이 집에 배송되어 온 그 날에야 당첨 사실을 알았다; 택배를 받아서 포장을 뜯고 책을 꺼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책이 예쁘게 나왔다는 것. 기본 판형보다 조금 날씬하고 미색과 파란색을 섞어 썼는데 느낌이 좋았다.
일단 책의 겉표지에는
마음껏 상상하고 ──마음껏 실패하라.
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
이야기의 바다를 유영하는 고독한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등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. 하지만 이 말들은 이 책이 작법 책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거나, '글은 열라 써야 되는거다 ㅇㅇ' 이라든가 '겁내지 말고 바로 쓰시면 됩니다 고고고 무비무비무비' 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.
이 책에서 다카하시 겐이치로 쌤(!?)은 오히려,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단단히 하고 바싹 깎은 연필이 무뎌질 때까지 손을 놀리는 열렬한 습작을 말리고 있다. 그의 생각에 따르면 '쓰기'보다 먼저 해 두어야 하는 일들, 앞서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야말로 거듭되고 길어질수록 좋은 것이다...
그러면 첫 줄을 쓰기 전까지 꾹꾹 참으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?
온라인의 소설가 지망생들 중에는 소설을 위해 기나긴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. 본인의 (에너지나마 넘치던) 옛날 경험이니까 실제로 있고 없고를 의심하지는 말자... 여하튼 그 기나긴 준비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. 캐릭터 만들기, 플롯 짜기, 세계관 만들기;;; 등등. 이 과정에서 높은 확률로 생산되는 부수적인 것들로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, 나 혼자 아는 예고편, 방대한 세계관에서 나오는 외전 스토리 계획 등이 있다. 여기서는 일단 웃자.
하지만 설마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준비가 저거겠는가. 책 속에 위의 예에 딱 들어맞는 언급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,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.
정말로 알고 있는 이야기만이 소설이 될 수 있다.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것이다 ──그러니 쓰고 싶어하는 우리는 설익은 욕망을 피해야 한다. 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은 한 줄의 정의로 표현할 수 없는 것, 어느 순간 돌연히 폭죽이 터지듯 나타났다 모습을 감추는 것, 이야기의 실마리다.
그렇다. 누구나 이야기를 쓸 수 있다. 그리고 기술적 구성과 문예의 기교에 관한 부분 앞에 있는 이야기야말로 진짜배기일지 모른다. 수업 중 교수님의 말씀대로── 세계와의 교감을 간절히 소원하노라고 독백하는 시인보다, 봄을 맞아 꽃피운 화분을 들여다보며 말을 거는 어느 어머니야말로 진짜 시인인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.
다카하시 겐이치로는 <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> 안에서 내내 그런 말을 하고 있다. 나는 때로는 조그만 초등학생이 되어, 때로는 스물넷의 지금 모습이 되어 그가 일러주는 말을 들었다. 기술적 훈련이나 실전, 이성 같은 키워드와는 접점이 없는 그의 수업은 꿈 같았다. 무더운 여름날, 창 밖에 큰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매미가 울어대는 오후의 어느 시간, 잘각거리는 유리창이 반쯤 열려 그 틈으로 바람이 오가는 작은 교실. 책걸상과 바닥이 나무로 되어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상상 속의 공간에서 돌아나오고 싶지 않아, 꽤 한참 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.
이제 이 책을 읽고 리뷰도 썼으니 연필로 고래도 잡을 수 있... 을지는 모르겠지만, 일단은 심오하고 엄숙한 창작 지망생의 고통스러운 시간 대신 즐겁게 생각하고 쉽게 행복해하는 바보의 나날을 보낼 생각이다.